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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고군분투 획 디자인기 - 획, 니가 뭔데
    카테고리 없음 2023. 6. 27. 10:43

    날 괴롭혀? 

     

    처음 글자 그리는 사람은 '획'에 대한 로망이 있다. 

    아니, 그냥 내가 그랬다. 획을 세련되고 예쁘게, 멋있게 그리고 싶어

    활자 디자인 수업도 듣게 되었다. (레터링을 꾸준히 했지만 레터링만으론 획 그리는 실력을 기르기 부족했다. 

   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보면 활자 그리는 사람들이 확실히 획을 잘 그렸다.) 

     

    획 그리는 것을 배우고 싶어서 듣게 된 수업이었지만 결국 획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. 

    그리고 글자 그리는 막바지에 이른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다. 어제 열심히 그린 글자도 오늘 보면 못생겨 보인다.

    눈에 차지 않는데, 시간이 없어서 고치지도 못한다.  

     

    도대체 획, 진짜 너 뭐야?

     

    활자 디자인 1, 첫 수업부터 수강생의 반 정도만 남아서 다음 수업으로 넘어간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. 

    사실 나도 '처음' 그리는 초반에 획 때문에 한 번 정도 하차할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. (뭐 무사히 살아남아서 지금은 마무리하는 중이지만.)

    그만큼 어려웠다.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무사히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었는데,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.

     

    -> 처음 그린 과정을 보고 싶다면 (2021년 9월 ~ 2022년 4월)

    https://hiut-type.com/jusang_proc.html

     

    지난 2월, 텀블벅에 '처음'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생님께서 획을 다시 디자인해보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. 

     

    .....??????? 

     

    그렇게 나는 거의 일 년 만에 획을 다시 디자인하게 되었다. 

    그리고 나 처럼 기댈 곳을 찾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획 초보자를 위해 글을 남기기로 마음먹었다.  

     

    [참고]  '처음'의 획은 당나라의 명필가 '저수량'의 글씨에서 따왔다.

    먼저 선생님께서 잘 쓴 옛 글씨에서 획을 가져오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셨고,

   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자료들을 보고 최종적으로 저수량의 글씨를 선택하게 되었다. 

    가늘지만 힘있는 인상과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획이 마음에 들었다. 

     


    획 그리는 법

     

    1. 이용제 선생님께 자료를 빌려 참고할 글씨 사진을 찍는다. 자료는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많이 찍는다. 

    사진 찍은 저수량 자료

     

    2. 컴퓨터에서 인디자인을 켜고(일러스트레이터도 상관없음) A4 사이즈 대지에 찍은 사진을 적당한 크기로 배치하여 출력한다.

    *주의할 점: 사진을 너무 크게 확대하여 출력하면 픽셀이 깨져서 획이 잘 안보이므로 확대는 적당히! 나는 그림 상자 한 개 크기를

    가로 세로 약 4cm 정도로 잡았다. 

     

    잘못된 예: 자세히 보면 픽셀이 다 깨져 보인다. 크게 출력하면 획이 더 잘보일 줄 알았는데 망했음.
    잘 된 예

     

    3. 출력한 종이 위에 트레이싱지를 놓고 샤프로 획을 따라 그린다. 

    *주의할 점: 귀찮다고 절대 이 과정을 생략해서는 안된다. 손으로 직접 획을 따라 그리다 보면 글씨를 그린 사람이

    어떻게 붓을 써서 그렸는지 알게 된다. 형태를 보는 눈도 조금 더 예민해진다. 처음에 획을 디자인할 때는

    이 과정을 하지 않았었다. 다시 획을 디자인하게 되었을 때도 이 과정을 하지 않아서, 오히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.

    획을 디자인하기에 앞서 원본의 형태를 파악해야 한다. 눈으로 본다고 형태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은 아니더라. 

     

    4. 손으로 따라 그려본 뒤 다시 컴퓨터로 돌아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필요한 획을 딴다. 

    5. 일러스트레이터로 딴 획을 가로획과 세로획, 삐침 등으로 구분하여 정리한 후 출력한다.

    가로획
    세로획

    6. 5번 출력물을 바탕으로 획 디자인을 한다. 컴퓨터를 사용하기 전에 손 스케치를 먼저 해보는 것이 좋다.  

    손 스케치
    완성된 획

     

    작업 소요 시간)

    1번: 몇 십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. 한 시간 안쪽. 

    2번: 오래돼서 기억이 안난다. 그래도 몇 시간 안에는 끝났던 거 같다. 한 서너 시간 정도? 

    3번: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렸던 것 같다. 

    4번: 1장 따는데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. 실은 단순 반복 작업이라 점점 하기 싫어져 한 장 딸 때마다 따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.

    3장 넘어가면서부터 1시간 반 넘게 걸리기 시작했다. 나는 총 6장을 땄는데, 약 7시간 정도 걸렸다.

    5번: 손스케치하고 컴퓨터 작업한 시간 합쳐서 몇 시간 정도. 사실 획디자인 작업은 잡고 있으면 끝이 없기 때문에, 

    작업 시간을 말하기 애매하다. 

     

    총 획 디자인 하는데 걸린 기간: 약 1달 정도? 처음에는 3번을 안 해서 까였고(3번을 하기 전엔 '저수량'의 획을 정말로 보고 그린 것이 맞느냐는 평을 들었다.), 나중에는 3번을 했음에도 계속 까였다.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간 끝난다. 그러니까 한 번 까였다고 굴하지 말고 계속 들이대라. 한 번도 까이지 않은 것처럼. (물론 디자인이 완성되면 전체 글자(약 2,800자)의 획을 다시 갈아야 하기 때문에 획을 디자인한 다음부터 진짜 시작이긴 하다.)

     

    끝!

     

    후기 - 획을 그리며

     

    어려웠던 점: 기존 활자의 생김새에서 벗어나는 것. 디자인해 온 연차가 높아서, 획 디자인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.

    신신명조나 윤명조처럼 많이 사용하여 눈에 익은 글자가 있는데, 그 형태에서 벗어나는 게 많이 힘들었다.

    거기에 예민하게 형태를 보는 눈과 섬세하게 그리는 손이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.  

     

    배운 점: 행복은 멀리있지 않다. 획을 안 그리는 게 행복이다! 세상의 서체 디자이너들 존경합니다!

    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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